지난 겨울은 빈털털이였다.
풀리지 않으리란 것을, 설사
풀어도 이제는 쓸모 없다는 것을
무섭게 깨닫고 있었다. 나는
외투 깊숙이 의문 부호 몇 개를 구겨넣고
바람의 철망을 찢으며 걸었다.
가진 것 하나 없는 이 世上(지상)에서 애초부터
우리가 빼앗을 것은 無形(무형)의 바람뿐이었다.
불빛 가득 찬 황량한 都市에서 우리의 삶이
한결같이 주린 얼굴로 서로 만나는 世上(세상)
오, 서러운 모습으로 감히 누가 확연히 일어설 수 있는가.
나는 밤 깊어 얼어붙는 都市(도시)앞에 서서
버릴 것 없이 부끄러웠다.
잠을 뿌리치며 일어선 빌딩의 환한 角(각)에 꺾이며
몇 타래 눈발이 쏟아져 길을 막던 밤,
누구도 삶 가운데 理解(이해)의 불을 놓을 수는 없었다.
지난 겨울은 빈털털이였다.
숨어 있는 것 하나 없는 어둠 발뿌리에
몸부림치며 빛을 뿌려넣은 수천의 헤드라이트!
그 날[刃]에 찍히며 나 또한 한 점 어둠이 되어
익숙한 자세로 쓰러질 뿐이다.
그래, 그렇게 쓰러지는 法(법)을 배우며 살아남을 수 있었다.
온몸에 시퍼런 절망의 채찍을 퍼붓던 겨울 속에서 나는!
- 기형도
빛바랜 편지에 적혀 있던 기형도의 시.... 오랜시간 동안 이따금 읽어 보았지만....
그래 그때 그 시절에 너는 무엇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냐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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