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겨울, 우리들의 都市 - 기형도

by rokwha 2012. 11. 5.

지난 겨울은 빈털털이였다. 
풀리지 않으리란 것을, 설사 
풀어도 이제는 쓸모 없다는 것을 
무섭게 깨닫고 있었다. 나는 
외투 깊숙이 의문 부호 몇 개를 구겨넣고 
바람의 철망을 찢으며 걸었다. 

가진 것 하나 없는 이 世上(지상)에서 애초부터 
우리가 빼앗을 것은 無形(무형)의 바람뿐이었다. 
불빛 가득 찬 황량한 都市에서 우리의 삶이 
한결같이 주린 얼굴로 서로 만나는 世上(세상) 
오, 서러운 모습으로 감히 누가 확연히 일어설 수 있는가. 
나는 밤 깊어 얼어붙는 都市(도시)앞에 서서 
버릴 것 없이 부끄러웠다. 
잠을 뿌리치며 일어선 빌딩의 환한 角(각)에 꺾이며 
몇 타래 눈발이 쏟아져 길을 막던 밤, 
누구도 삶 가운데 理解(이해)의 불을 놓을 수는 없었다. 

지난 겨울은 빈털털이였다. 
숨어 있는 것 하나 없는 어둠 발뿌리에 
몸부림치며 빛을 뿌려넣은 수천의 헤드라이트! 
그 날[刃]에 찍히며 나 또한 한 점 어둠이 되어 
익숙한 자세로 쓰러질 뿐이다. 
그래, 그렇게 쓰러지는 法(법)을 배우며 살아남을 수 있었다. 
온몸에 시퍼런 절망의 채찍을 퍼붓던 겨울 속에서 나는! 

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- 기형도 


빛바랜 편지에 적혀 있던 기형도의 시.... 오랜시간 동안 이따금 읽어 보았지만....

그래 그때 그 시절에 너는 무엇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냐?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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